방랑자(朱相圭) 2010. 4. 7. 10:08

2003년 겨울,

무설재 뜨락에서

무설재 쥔장의 책과

장석주 시인의 시집 출판 기념회를 빙자한

가까운 문인과 지인들의 어울림 속에서 였다.

 

그러니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녀가 누구였는지 기억날리도 없었지만

 

그래도 간간히 마주칠 기회는 있어서,

혹은

무설재 뜨락을 찾아들 기회가 없지 않아

 

몇번의 만남을 가졌거나

아는 체를 했거나 가 전부 다.

 

가장 최근이라고 해봤자

지난 해 안성시립도서관 소속

소설창작반의 문집 발행시 진행된

무설재 뜨락 축제가 끝나고도 한참 뒤

바쁜 걸음으로  쫓아와

잠깐의 얼굴을 맛뵈기로 보여주던 것이 또 그 마지막인데

 

그참에도 안색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금방 자리를 떠나버렸던 것이 기억의 끝이다.

 

그 이후로는 그저

들리는 소문만으로

 

그녀가 말기 암 상황이라는 것과

어린아이가 넷이라는 것과

 

너무도 착하고 예민한 성격에

신데렐라 컴플렉스의 전형이라는 것과

 

끝까지 붙들고 있던

글자락을 그만 두게 생겼다는 것과.....기타 등등의 소문만이 무성하였다.

 

모르던 인연도 극한 상황이라면 관심권 안에 들 터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도 아니고

몇 번의 눈길이 오갔던 사람의 소식을 바람결에 듣고 있자니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불쑥 나설 수 있는 입장도 아니요

친밀감을 표시 할 아무 근거도 없는 인연이기에

그저 그런가 보다 했었지만

 

막상

그녀가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박완숙, 그녀...

자신의 육신이 고달픔을 호소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귀기울여 들을 새 없이 고단하고 지난했던 날들을 살아야 했던

 

그런 슬프디 슬픈

아쉽고도 아쉬운 미련의 사연들이

안성 바닥을 흘러다닐 무렵

 

비록

몸은 세상 건너편 자락으로 숨겼지만

그래도 틈틈이 그녀가 써놓았던 글귀들이 있어

 

함께 습작을 하며 시 공간을 더불어 나누던 문우들이

자비를 털고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번듯하게 그녀의 유고집을 내게 되었고

 

그 유고집이 어제

무설재 쥔장의 손에까지 전달되었다.

 

개인적인 상황이 맞물려

아직 많은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지만

짧게 읽은 것 만으로도

 

그녀의

성정과

감성과

글자락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글 모퉁이에서 느껴지는

그 감정의 미묘함, 세세함이 사라질까 두려워

일단 어줍게 그녀를 기억하고자 하는 지금

 

내 감정에 충실하려는 것인지

그 감정을 빙자해

지난 유고집 발간에 참석하지 못한 마음을 추스리려는 것인지

 

사실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만

 

어쨋거나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녀 박완숙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과

아까운 글쟁이 하나 잃었다는 것과

남겨진 아이들의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날들과

살을 맞대고 살았던 남편의 긴 그림자가

한동안은 짙게 남아있을 것 이라는 현실감도 함께 다.

 

 

그러나

그녀가 가고 없는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갈 일이요

 

남겨진 사람들은

또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게 될 것이요

살아질 것 이라는 세상사 이치를 생각하면

 

역시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가

머리 속에 남을 뿐이다.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탓에

 

그녀 박완숙,

오늘

그녀를 기억하고 싶었다.